
텅 빈 방에서 올라오는 슬픔과, 여전히 움직이는 삶
내가 근무하는 곳은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며
단기적으로 자립지원을 받고, 돌봄을 받는 곳이다.
짧게는 몇 달, 길게 머물러도 1년이면 떠나야 하는 공간이다.
최근 며칠 사이에 두 가정의 퇴소가 예정되어 있었고,
어제는 그 중 한 가정이 먼저 퇴소를 했다.
그 전날 밤, 이미 인사를 나누었지만
다음날 야근 근무를 나오면서 마주한 풍경은 꽤 낯설었다.
말끔하게 정리된 거실과 침실을 보는 순간,
허전함이 조용하게 밀려왔고, 그 허전함이 슬픔으로 느껴졌다.

웃으면서 인사하던 젊은 엄마도,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근무자가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 인사하던 아이도
이제는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언젠가의 이별을 전제로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 위에 서 있다.
함께하는 시간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영원할 것처럼, 이별이 없을 것처럼 산다.

사실, 영원히 함께하는 느낌, 이별이 없는 느낌은
사람 본질에 가까운 느낌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영원’은 물리적인 만남의 지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원의 느낌, 언제나 있는 느낌.
형태를 넘어서는 그 느낌이야말로 실체에 가깝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지만,
사실은 그렇다.
시간도 없고, 장소도 없는 느낌은 언제나 있다.
I AM.
이러한 ‘있음’으로부터 우리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살아간다.
이별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한다.
이 ‘있음’의 자리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저 있음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질을 모르고 살면,
본인은 이미 본질에 있으면서도 늘 결핍으로 산다.
이별을 하면 죽을 것 같고,
슬프면 잘못된 것 같고,
아프면 안 될 것 같고,
즐거워도 왠지 불안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어떤 것도, 지나가지 않은 것은 없다.
그 ‘지나감’을 즐길 것인가,
붙잡으며 버틸 것인가는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사느냐에 달려 있다.

퇴소한 후 텅 빈 방을 보면서 느껴지는 슬픔과 허전함 속에서
오히려 모든 순간의 삶이 소중해진다.
하지만 여기에만 머물 수는 없다.
다시 스스로가 살고 있는 삶의 장면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사람 본질의 느낌, 곧 움직임을 살아야 한다.
삶은 머물지 않는다.
생명은 멈추지 않는다.
영생은 언제나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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