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치 옥수수 한 알에 무수한 옥수수가 담겨 있듯이, 우리 안에는 이미 모든 것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움직임을 통해 드러내고 풍부하게 만들어갈 뿐입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모든 문명도 결국 움직임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생각에 갇힌 현대인
그런데 이성을 가진 존재이다 보니, 우리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명의 본질인 움직임이라는 시작점을 놓쳤습니다.
원래 생명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 먼저 느껴지고
- 그 느낌으로부터 생각을 가져다 쓰는 것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 생각 속에서 알아지고 살아진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안다는 것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삶을 통해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변할 수 없는 사실로 확신하는 것, 흔들리지 않는 앎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앎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앎도 결국 나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대상으로 떨어뜨려 놓으면 관념이 되지만, 나 자신에 대한 앎은 내게서 살갑게 경험되는 것이기에 누구도 그 확신을 흔들 수 없습니다.
문제는 율법적 세상에서 살다 보니,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착각들)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붙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못났다"고 믿으면, 누군가 "잘났다"고 해도 "이용하려나? 놀리나?"라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아는 것을 산다
- 알아진 것으로 살고
- 살면 더 알아지고
- 다시 그것을 삽니다
지금까지는 관계적 속성, 상대적 개념을 살아왔다면, 이제는 스스로의 속성, 본질적 온전함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새 시대 새 포도주로서의 삶입니다.

실천: 스스로를 쉬어주기
1. 바른 자세로 앉아 쉬기
약속의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쓰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스스로를 그냥 그대로 쉬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외적 움직임을 보류하기
현재 대부분의 움직임은 대상과 관계 중심이기에 목적과 결과를 염두에 둔 움직임입니다. 이런 노력은 끝이 없습니다.
외적 움직임을 보류하고 쉬어줄 때, 대상의 움직임이 아닌 스스로의 움직임이 본질적 속성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일반 명상들은 뭔가를 하지만, 그저 바른 자세로 쉬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3. 일관되게 스스로의 움직임 하기
많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해내듯이, 스스로의 움직임을 일관되게 하면 삶의 현장에서 상대적이지 않은 움직임을 할 수 있는 힘이 복원됩니다.
새로운 삶의 모습
스스로를 쉬어주고 스스로의 삶으로 움직이다 보면:
- 대상과 결과는 저절로 되어지고
- 과정 안에서 순간의 삶을 살게 됩니다
- 애쓰지 않되 열정적이게 됩니다
- 결과를 갖되 과정을 살게 됩니다
순간의 삶을 살 때:
- 염려와 걱정이 사라지고
- 즐김이, 감사가, 충분함이 넘칩니다
그때 비로소 "이미 모든 것이 있다, 내가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핵심 메시지: 생각에서 벗어나 쉼과 움직임으로 돌아가세요. 우리 안에는 이미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저 스스로를 쉬어주고, 본질적 움직임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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