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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돼지가 아닌 사람의 창조성으로!

by 토마의 사람이야기 2025.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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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 창조성의 회복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단 하나, 창조성입니다.
모든 것을 느끼며 살아가지만, 그 느낌을 기반으로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만들어 내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배고픔을 느끼지만, 어떻게 먹을 것인가는 사람만이 창조해냅니다.
보호받고 싶어 하고 함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동물도 같지만,
그 보호의 방식, 함께하는 형태를 수없이 변주해내는 창조성은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

문제는, 이런 창조성을 가지고도 많은 사람들이
주어지는 대로 사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먹고, 추우면 피하고, 더우면 식히는 1차적 반응은
동물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능입니다.

사람의 창조성은 그 이상의 세계입니다.
전혀 갇히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는 힘,
느낌을 이성으로 가공하여 고차원적 현실로 물질화하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입고 먹고 자는 일상의 모든 모습이
조금 더 안락하고, 조금 더 풍성하고, 조금 더 편리해진 문명은
결국 사람의 창조성이 계속 발전해온 결과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원시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부분이 있다

문명이 발달했어도, 사람의 내면은 아직 원시적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느낌의 출발점이 ‘나로부터’가 아니라
주변 사람, 상황, 사건 같은 외부 자극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느낌이 촉발되고,
그 촉발된 느낌을 가지고 생각을 만들고, 행동을 선택합니다.

사실 이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창조성이고 자율성이며,
‘신을 닮은 속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창조자가 아니라 외부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고 느낍니다.
뜻하지 않은 사건, 원치 않은 고통, 통제할 수 없는 죽음 등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느낌’에서 시작된다

성경의 표현으로 말하면 그것은 ‘영’입니다.
형체는 없지만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생명력,
공기와도 같은 바닥이자 기반입니다.

이 생명력 안에서 모든 것은 춤추고 꽃피웁니다.
눈에 보이는 반쪽짜리 무지개만 보면
꽃이 피는 건 아름답지만 지는 건 슬프고,
웃을 때는 행복하지만 울 때는 불행하고,
살아 있을 때는 가치 있지만 죽으면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무지개는 원래 완전한 원형입니다.
보이지 않는 나머지 반쪽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온전한 삶’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은 동물이 된 적이 없다

사람은 동물이 아닙니다.
사람의 문명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 근본은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지금까지 만들어 온 것들이 절대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사람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각이 흐려져 있을 뿐입니다.

“어여쁘고 어여쁘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표현되는
존재 자체의 무흠함, 조건 없는 가치.
이 본질을 잃어버리고, 비교와 기준에 묶여 창조하다 보니
문명은 화려해졌지만 사람의 마음은 점점 고독해졌습니다.

누군가는 문명의 수혜자,
누군가는 문명의 피해자가 되는 구조가 생겨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제는 새 시대 – 사람의 창조성을 회복할 때

우리는 그동안 ‘행복’과 ‘사랑’을 회복하려고 노력했지만
대부분 방법이 외부 중심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인정, 사회의 기준, 타인의 평가에 기대어 행복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본질은 단순합니다.
“사람은 느껴지는 느낌으로 온전하고 충분한 존재다.”

이 사실을 바닥으로 삼고,
스스로 자신을 창조해 나가는 삶을 살 때
비로소 사람은 따뜻함을 피워내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뿌리를 다시 세우자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방향이 오랫동안 ‘외부’로 향했기 때문에
비교하고 평가받는 삶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방향을 ‘내부’로 돌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바로 고통의 역할입니다.
고통은 사람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신호입니다.


모두가 존중받는 삶

사람이 스스로 충분함을 느끼고 주체로 설 때
그는 누구도 해치지 않습니다.

사장이어도, 노숙자여도
남자든 여자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박사든 초등학교 졸업이든
펜트하우스에 살든 지하 원룸에 살든
모두가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등한 삶이 됩니다.

있는 사람은 기꺼이 나누고,
없는 사람도 당당하게 받으며,
비교가 아니라 고마움으로 어우러지는 삶.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이미 ‘역할’이 되고 있음을 느끼는 삶.

이것이 사람다움이며, 이 자리에서 찾는 행복은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지 않고
우리 주변의 평범한 세잎 클로버 속에서도 충분히 발견됩니다.


사람의 온전함이 이루는 하나된 삶

이러한 사람이 서로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세상,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며
반드시 만들어질 새로운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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