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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고통! 그것이 알고 싶다!-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진짜 이유

by 토마의 사람이야기 2026.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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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왜 존재할까 — 마라의 쓴물이 알려주는 것

몸이 아파서 힘들 때, 관계 때문에 마음이 무너질 때, 돈 문제로 잠 못 이룰 때. 형태는 다 다르지만 우리는 누구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이 고통이 내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저 힘들고, 피하고 싶고,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죠. 고통이 진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겁니다.

홍해를 건넌 다음에 만난 쓴물

출애굽기 15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400여 년의 노예 생활을 끝내고 자유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엄청난 기적을 목격했으니,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순탄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광야를 걷던 그들은 사막에서 극심한 목마름을 겪습니다. 겨우 찾은 물조차 너무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마라'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법도와 율례를 정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가장 쓰디쓴 순간에, 가장 근본적인 치유의 말씀이 선포된 것입니다.

고통의 현장이 곧 치유의 현장이다

우리 인생에도 저마다의 '쓴물'이 있습니다. 원망스럽고, 고통스럽고, 절망스럽고, 좌절하게 만드는 그 현장들.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 자리가 치유의 현장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왜 치유의 현장인가"를 따지기 전에,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통이 지금 내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고통은 나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제대로 세우기 위한 법도와 율례라는 것. 이 해석을 갖고 고통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통을 싫어하고, 힘들어하고, 피하려고만 하면 그 고통이 무엇을 말하는지 결코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고통에 귀 기울이면 보이는 것

가만히 고통에 귀 기울여 보면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바로 '내가 외부의 대상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 사람에게 실망하는 건, 그 사람에게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 돈 때문에 힘든 건, 돈으로 무언가를 채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 자존심이 상하고 창피하고 거절감을 느끼는 건, '나'라는 존재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만들어진 어떤 모습을 얻으려는 기대와 바람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결국 우상입니다. 만들어진 것이고, 없어지는 것이고,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면, 그 고통은 단 하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의 존재를 알라. 네가 어떤 존재인지 알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존재의 자리

이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흔히 예수님이 우리 대신 구원을 이루셨으니 감사함으로 살아야 한다는 접근에서 신앙이 시작되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대신해 주셨다", "예수님을 사랑하자"는 데서 멈추면 거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셔서, 내가 예수님으로 살아야 진짜 가능해지는 삶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연합', '한 덩어리', '하나에서 난지라'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 됨을 살아가면, 더 이상 외부의 대상에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외적인 만족을 구하며 헤매지 않게 됩니다. 왜일까요? 이미 스스로 만족하고 있고, 이미 전체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인 만족을 찾아다니지 않고, 먼 미래를 좇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가 이미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결핍이 아니라 풍성함으로

이렇게 존재됨을 알고 그 안에서 전체를 사는 삶을 살면, 세상에 딱히 바랄 것이 없어집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돈으로 나를 채워야 한다는 결핍감 없이 돈을 벌고, 그렇게 얻은 것들을 필요할 때 풍성하게 씁니다. 주체가 '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짜 자유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더 바랄 것 없는 삶, 충만한 삶.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삶.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과 평안. 이것이 우리의 원래 모습입니다.

고통을 사인(sign)으로 읽는 연습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은 우리를 원래의 모습으로 살게 하기 위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먼저 그 역할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이 고통이 나를 세우는 거구나. 진정한 율례와 법도를 세우는 거구나.'

여기서 말하는 율례와 법도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행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존재의 충족감과 만족감으로부터 나오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면 방향이 잡힙니다. 고통을 피하거나 저항하려 하지 않고, 고통 가운데서 다시 방향을 잡고 현실 안에서 한 걸음씩 움직여가는 삶. 그것이 바로 고통을 사인으로 읽어내는 삶입니다.

이런 알아차림이 날마다 연습되면, 고통은 더 이상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세우고 살아나게 하는 역할로 재배치됩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우리 안의 우물은 점점 더 깊고 풍성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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